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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와 메타버스, 그리고 감정의 미래

  • 작성자 사진: Jun'D
    Jun'D
  • 2023년 12월 1일
  • 3분 분량


제는 메타버스 시대도 점점 확장되어가고 있다. 적어도 지금 현 환경의 상황을 보면 생각보다 빠른 미래에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이 작가의 생각이다. 당장 뉴스만 보면 지구의 자연이 망가지고 있기 때문에, 해수면이 올라 원래 사람이 살던 도시나 섬이 사라지고, 기온이 너무 높거나 너무 낮아져 사람들이 죽는 경우도 있다는 보고도 있다. 즉 우리는 이제 옛날처럼 자연을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이 상실되어, 밖에서 생활하기 보다도, 그나마 우리가 기계의 도움으로 인간이 생활하는 환경을 최적화할 수 있는 건물 내에서 생활을 많이 할 것이다. 지금도 여름이나 겨울에 어떻게 생활하는지 돌이켜보면 이해는 될 것이다. 실내에서 보내는 시간이 점점 더 길어지고 있다. 이렇게 된다면 도시간, 나라간 인구의 이동이 많이 제한적이게 될 것이고, 메타버스라는 온라인 플렛폼 안에서 지인들이나 새로


운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이 된다. 마치 2018년작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 (Ready Player one) 속 삶처럼 살게 될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그저 눈으로만 바라보는 세상이겠지만, 나중에는 느낄 수 있는 기술까지 나오게 된다면 사람들은 이제 오프라인에서의 삶을 잊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직접 느낄 수 있었던 감정도 서서히 없어질 것이다. 미래에는 감정이라는 것 자체를 이해를 못 할 수도 있다. ‘이퀼리브리엄 (Equilibrium, 2013)’이라는 영화 속 감정을 못 느끼게 통제된 사람들처럼 말이다. 게임하거나 영화를 보거나 가상의 세계를 보고 나온 후에 잠깐이나마 무감정적인 때를 느껴 허망하다는 잠깐의 찰나를 가진 때가 있을 것이다. 이 부분은 ‘중독’과 많은 연관이 되어있는데, 다들 유튜브로 마약이 어떻게 우리를 중독을 시키는지 과정을 보여주는 영상을 한번쯤 쓱 봤을 것이다. 리사 펠트먼 베럿도 중독에 대해서 언급을 한 적이 있기도 하다. 우리가 도파민을 통해서 행복이라는 감정을 느끼는데, 평소에는 100만큼의 도파민을 받으면 행복을 느끼는데, 마약을 한 번 하게 되면, 그때 도


파민의 량이 1000, 2000까지 한꺼번에 올라 우리가 극도의 행복을 느낄 수 있게 된다고 한다. 그 이후에는 전에 했었던100 정도 양의 도파민을 주는 일상 생활을 해도 만족을 못하니, 다시 마약을 찾게 되는 굴레에 빠진다고 한다. 게임 중독, 유튜브 중독 등 이런 유형의 중독도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메타버스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메타버스 속 세계는 현 세상과는 다르게 당연히 다들 알다시피 자유도가 높다. 요즘에는 핸드폰 하나로 우리의 필요를 대부분 다 해결을 한다. 은행 업무, 쇼핑을 핸드폰이면 다 끝낼 수 있으며, 컴퓨터 하나만 있으면 보안 문제가 없는 조건 하에 회사 일을 재택 근무로 하거나 온라인으로 강의를 들을 수 있는 세상이 왔다. 이런 생활은 메타버스 안에서 못할 것이라는 이유는 없다. 이 외에도 우리의 외형도 바꿀 수도 있고, 주변 환경도 자유자제도 바꿀 수도 있을 것이며, 비행기의 도움 없이 날아다니거나, 빛처럼 빠르게 달릴 수도 있고, 컨트롤러 클릭 몇 번으로 나라나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으로도 바로 놀러갈 수 있을 것이다. 현실에서는 할 수 없었던 행위들을 아무런 대가나 위험 없이 할 수 있을 것인데, 이런 유혹을 뿌리 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을까? 이런 유혹을 한 번 맛을 보면 오프라인에서 생활은 점점 무미건조하고, 감정이 건조해질 것이다. 즉 메타버스에 중독이 되어 느끼는 감정이 서서히 없어질 것이라고 작가는 생각하는 것이다.[1]


이 뿐만 아니라, 인간들이 냉담하고 무미건조한 생명체가 되지 않는다 해도 AI가 대두되고 로봇들이 항상 많이 발전하고 있는 추세이다. 지금은 계발자가 프로그래밍 하면서 명령된 것들 베이스로 로봇들이 아직까지는 판단하고 움직이고 있지만, 이런 소식을 들었다. 모이 군사훈련에서 AI드론에게 적 기지에서 몰래 가 정찰만 하면서 다음 명령까지 기다리라고 명령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AI는 지금이 적군을 없앨 딱 좋은 타이밍이라고 보고, 명령을 한 지휘관을 죽이고 타겟을 죽였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이정도면 나중에는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곁으로는 인간인지 로봇인지 분간이 안돼는 움직임이 완벽한 로봇형 AI 인간이 나오는 것은 이젠 상상이 아닐 것 같다. 이정도로 계속 발전하게 된다면


, 나중에는 인간과 로봇들이 같이 공존하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한다.

이런 상황과 메타버스가 맞물리게 된다면 감정을 느끼고 물려주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감정에 응호하는 AI 로봇이 한 무리를 만들고, 감정은 이제 불필요하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라면 감정을 배제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인류의 역사를 보고 이와 비슷하게 생각하는 AI 로봇들이 한 무리가 자연스레 지어질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무감정 사람들(Apathists)[2]대 감정 사람들(Sentimors)[3]의 공존과 차별, 혐오 및 크고 작은 테러들이 생길 가능성도 농후하다. 이에 따라서 차별을 유도하는 포스터들, 이런 차별들을 없애려고 하는 공익 포스터들이나 센티머들만의 프라이빗한 파티 등 여러 포스터들과 그레피티(graffiti)로 뒤덮는 상황들도 나오지 않을까 한다. 아, 여기서 말하는 ‘차별’은 혐오를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닌, 감정자들을 무감정자들로 만들려고 하는 하나의


무감정자들의 수단, 이로 인해 혐오는 감정자들이 가지게 되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라고 생각하시면 된다.





[1] 이외에도 영화 이퀄리브리엄에서 설정을 한, 사람들이 감정을 느끼지 않으려고 약을 투여하는 이유도 같이 살포시 얹는다. 영화에서는 핵전쟁과 크고 작은 전쟁, 사회 분열 등 인류의 멸망의 길은 감정 때문에 생긴다고 판단해 감정을 없애는 약을 투여하고 있다는 설정을 가지고 있다. [2] 무감정, 냉담함의 뜻인 apathy에 사람이란 의미를 가지게 해주는 접미사 ‘-ist’를 붙여 작가가 만든 무감정인 사람을 뜻하는 신조어. [3] 감정이라는 뜻인 sentiment에 사람이란 의미를 가지게 해주는 접미사 ‘-or’를 붙여 작가가 만든 감정을 가진 사람을 뜻하는 신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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