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사막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 작성자 사진: Jun'D
    Jun'D
  • 2020년 7월 29일
  • 3분 분량

최종 수정일: 2020년 7월 31일

사막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당신은 지금 작은 상자 속에 있습니다.

상자 안 공간은 사막으로 되어 있는 것이고요.

허나 상자 외부는 작아 보이더라도, 상자 안 공간은 무한하게 넓어질 수 있습니다.

이 공간을 어떻게 이용하느냐는 저에게 달려있죠

…… ……

잠시 시선에 대해서 얘기를 해보죠.

시선은 모두에게 다 신경 쓰이는 존재입니다.

자신의 행동과 생각에 영향을 많이 미치기 때문이죠.

요새는 인터넷의 폭발적인 발전에 의해 아래의 외부적인 요소가 너무나도 많이 우리에게 타격을 입히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유투브 등 무분별한 제3자에게 우리는 노출되어 있죠.

시선을 더 잘 받기 쉽고, 또한 느끼기에……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보여주고 싶은 것들만 보여주고 싶은 욕구가 있습니다.

남들보다, 적어도 지금 자신의 삶 보다 더 나은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 할 겁니다.

그래서 자신이 소유하고 있지 않은 거짓된 인맥, 저력을 강조하고, 나아가 스스로의 인성마저 왜곡하죠.

그걸 보고 있는 사람들은 그러한 것에 부러움을 느끼고, 자괴감에 빠지곤 합니다.

하지만 거짓으로 꽉 찬 사람과 그걸 보고 있는 이들의 끝은 어떤 가요?

허 망

공 허

이렇듯 시선을 계속 의식하다 각자 자신의 내부를 스스로 자신도 모르게 사막화 합니다.

순수한 의도로 보여주는 사람들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질투하는 시선들은 없다는 법은 없습니다.

‘어린 왕자’라는 소설을 예로 들어보죠.

이야기 첫 부분에 그림을 포기한 비행기 조종사가 나옵니다.

비행기 조종사는 코끼리를 삼킨 보아 뱀을 그렸습니다. 하지만 정작 사람들은 모자라며 무시를 했죠

훗날 그는 추락 사고를 당해 사막에서 비행기를 수리하는 중에 양을 그려 달라는 어린 왕자를 만났습니다.

귀찮았던 그는 상자를 그려 “이 안에 네가 원하는 양이 있다.”라고 말하고 그림을 건넸습니다.

어린 왕자는 그의 속도 모른 체 자기가 원하는 어리고 건강한 양이 그 상자 속에 있다고 좋아했죠.

그가 그린 그림들, 보아 뱀 속에 코끼리가 있고, 사실 상자는 텅 빈 상자라는 것은 비행기 조종사만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두 그림은 각기 다른 시선으로 인해 실제의 정체성을 잃고 다르게 보였습니다.

보아 뱀 그림은 외부의 시선에 의해 원래의 이미지가 왜곡되어 보였고, 상자는 그린 당사자가 만든 왜곡된 이미지(無에서 건강한 양)로 제 3자들의 시선이 바뀌었습니다. 더욱이나 가짜 이미지에 각자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어 좀 더 복잡한 이해관계가 형성되었죠.


그렇다면, 그 상자에 가려진 그 공간…. 그 시선에서 자유로운 걸까요?


원치 않는 갖은 오해와 상상에 모양을 맞춰 바뀌는 것이 다른 사람들을 만족하게 할지라도, 진정 그게 진짜 행복이라 할 수 있을까요?

원래의 위력을 잃은 보아 뱀, 비행기 조종사의 상자를 다시 곱씹으며 생각하면 어린 왕자의 저자가 말하고 싶은 ‘시선’ 문제의 요점을 알 수 있을 겁니다.

현재, 인터넷의 발전을 생각하면, 시선으로 인해 생기는 문재의 심각성이 한 층 심화되어 있는 것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자 다시 작은 박스 속 사막으로 돌아오죠.

왜 갑자기 제 박스를 얘기하다가 시선을 얘기하는지 궁금해하실 겁니다.

눈치가 빠른 분이시라면 이미 이해하셨겠죠.

박스 = 한 인격의 외적 요소

사막 = 한 인격의 내적 요소

이해하셨나요?

시선. 상자. 사막. 이 세 개의 단어는 제 작품의 핵심 단어들입니다

저는 텅 빈 껍데기와 같습니다.

다른 분들에게 보여줄 게 많지 않기 때문이죠, 그래서 인맥이 별로 없는 이유라고 생각되고요.

전 외부 시선에 매력적으로 보여줄 만한 것이 없다고 생각해왔습니다.

저는 이 사막을 살아있는 땅으로 바꾸려고 합니다.

그리고 전 당신을 이 여정에 당신을 초대를 한 것입니다.

이 글을 읽으시고 있다는 것은 제 초대에 응해줬다는 뜻이겠죠.

......... 감사합니다

당신도 저처럼 태어났을 때부터 박스 속 무한한 공간을 부여 받았습니다. 모두 다 공평하게 받았죠.

하지만 공간 속을 어떻게 꾸미느냐, 어떻게 할 것인가, 그 과정은 공평하지가 않을 것입니다.

각자 처해져 있는 환경은 그리 친절하지 않으니까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수많은 상자들이 수많은 줄로 얼기설기 이어져 있는 하나의 큰 네트워크 세상에서 살고 있다고 비유할 수 있습니다.

시선은 바이러스 같은 존재입니다. 다른 요소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또한, 변형이 쉽게 일어나고, 시선의 숙주를 취약하게 만들죠. 어쩌면 다시 돌아오지 못할 길을 가도록 밀어붙이기도 합니다.

이 시선들을 차단하면 진정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그렇게 되면 지금 존재하는 사회적 법규, 관습과 도덕, 윤리…… 이런 것이 아직 유효할까요?

아니, 애초에 만들어졌을까요?

시선 하나 때문에 그나마 살기 괜찮은 환경이 조성되고, 또한 시선 하나 때문에 산 자가 한 줌의 재가 되기도 합니다.

그럼 이 시선에서 영원히 자유로워질 수는 없는 걸까요?

사람들은 이 시선들 속에서 살기 위해 각자만의 방법으로 자신들의 상자를 가꾸고 있습니다.

자신의 상자에서 나온 빨간색 줄이 타인의 상자에 연결되어 그 사람에게 영향을 준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한 체 말이죠.

이런 줄을 완전히 끊고 고립됐을 때는……

아마…….

……………

앞서 다른 시선 앞에 부끄러워하지 않을 만큼 저를 꾸미겠다고 했습니다.

제 의식은 저의 의지로 하는 행동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도 타인의 시선을 느끼고, 시선에 의해 수동적으로 행동이 옮겨진 결과라고 생각하시나요?

아니면 비행기 조종사처럼 제가 남의 시선에 나는 이러한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자의적으로 심는

'이미지 세탁 과정'이라 생각되어 지나요?

모든 사람들은 시선을 애써 무시하고 살려고 합니다. 각자만의 자유를 최대한으로 만끽하며 살고 싶기 때문이겠죠.

시선은 투명한 양날의 칼과 같은, 우리와 때려야 땔 수 없는 죽음의 사신과 같은 존재입니다.

만약 우리가 시선을 완전히 배제하고 산다면, 우린 무엇을 증언하게 될까요?




댓글


bottom of page